2010. 4. 27. 20:58ㆍmusic
Eric Clapton - Unplugged 1992
Unplugged
Eric Clapton
Track listing
1.Signe 3:13
2.Before You Accuse Me (Ellas McDaniel) 3:36
3.Hey Hey (Big Bill Broonzy) 3:24
4.Tears in Heaven (Clapton, Will Jennings) 4:34
5.Lonely Stranger 5:28
6.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Jimmy Cox) 3:49
7.Layla (Clapton, Jim Gordon) 4:40
8.Running on Faith (Jerry Lynn Williams) 6:35
9.Walkin' Blues (Robert Johnson) 3:37
10.Alberta (Traditional) 3:42
11.San Francisco Bay Blues (Jesse Fuller) 3:23
12.Malted Milk (Robert Johnson) 3:36
13.Old Love (Clapton, Robert Cray) 7:53
14.Rollin' and Tumblin' (Muddy Waters) 4:10
Personnel
Eric Clapton - guitar and vocals
Andy Fairweather-Low - guitar
Ray Cooper - percussion
Nathan East - bass, background vocals
Steve Ferrone - drums
Chuck Leavell - keyboards
Katie Kissoon - background vocals
Tessa Niles - background vocals
James Barton - engineer
Eric Clapton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위치 이동을 하지 않는다.
그만의 존재 방식이 있다.
구슬픈 블루스와 영욕의 삶이 함께 하는 그만의 장소가 있다.
그런 그에게 대중들은 마법에 홀린 듯 빨려 들어간다.
더불어 기뻐하고 슬퍼한다.
에릭 클랩튼. 바로 그의 ''힘''이다.
살아있는 음악 전설
에릭 클랩튼은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음악 전설''이다.
40여 년의 음악 여정 동안 그가 쌓아올린 메리트는 가히 대단하다.
야드버즈(Yardbirds)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레이커(John Mayall''s Blues Brekers) 시절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크림(Cream)의 활동기간 동안 헤비 메탈의 원형을 제공했고, 재즈와 블루스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솔로로 독립하고부터는 ''진짜 블루스''에 접속 불가를 외치는 대중들에게 팝 지향적인
''달콤 쌉싸름한 블루스''를 패스워드로 내놓아 블루스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래미 트로피를 13번이나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2년 야드버즈,
1993년 크림 그리고 지난해 개인 자격으로 헌액된 것에서도 클랩튼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블루스의 제왕'' 비비 킹(B.B King)과 협연한 작품 [Riding With The King]으로
그래미 시상식 ''최고의 트러디셔널 블루스 앨범(Best Traditional Blues Album)''부문 후보에 올랐다.
클랩튼은 ''기타의 신'', ''슬로핸드(Slowhand)''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기타 테크닉에 있어서도 대가(大家)의 경지에 올랐다.
감정을 질펀하게 쏟아내면서도 정확하고 절제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벤딩 주법(일명 초킹)과 비브라토는 다른 연주자들이 흉내조차 내기 힘들 정도다.
그의 기타 연주와 관련하여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칭찬 코멘트를 들어보자.
에릭은 정말 재주가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과 함께 블루스를 연주한다.
그가 연주할 때 당신은 그것이 블루스라는 것을 알 것이다.
(비비 킹)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블루스 연주가 뛰어나다.
왜냐하면 그는 블루스를 공부했고, 그것에 대해 당당하기 때문이다.
(제프 벡)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연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하늘에서 치는 천둥번개 같았다.
(존 에더리지)
하지만 이런 융숭한 대접에 대해 클랩튼은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는 악평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소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평도 마찬가지다''며 자신을 향한 관심을 무척 꺼려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뮤지션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나같이 연주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자기 스타일로 연주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보다는 그들만의 길을 개척할 것을 충고한다.
그의 음악과 인생 여로(旅路)가 굴곡이 심했기에 그 말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전설의 시작
에릭 클랩튼은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레이(Surrey)주의 리플리(Ripley)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생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흑인들의 비참함과 슬픔을 노래한 블루스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랩튼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빅 빌 블룬지(Big Bill Broonzy),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 등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특히 ''델타 블루스의 왕''이라 불리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로버트 존슨의 앨범들은 내가 음악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있었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야드버즈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의 뛰어난 블루스 기타 테크닉은 단숨에 그룹의 사운드를 특징지었고,
매니저 조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는 그에게 ''슬로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클랩튼은 그룹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며
1965년 3월 팀을 떠나 존 메이올이 이끌었던 블루스 브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야드버즈를 탈퇴한 직후 그가 연주했던 ''For Your Love''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과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바로 록 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가 야즈버즈를 통해 모두 비상했다.
1964년 Yardbirds - [Five Live Yardbirds]
1965년 Yardbirds - [For Your Love]
나, 블루스로 돌아갈래!
이 당시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가지.
그는 블루스 브레이커스의 휴지기 동안에 다른 뮤지션들과
전세계를 돌며 블루스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랩튼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몇몇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클럽에서 계속 머물며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그러나 강도로 돌변한 클럽 주인의 협박으로 옷과 새로 산 마샬 앰프를 놔둔 채 영국으로 도망쳐야 했다.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문외한이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클랩튼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존 메이올의 독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1966년 존 메이올 몰래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와 함께 크림을 조직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음악 전문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의 폭로로 인해 클랩튼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해고를 당해야만 했다.
이 때 런던의 한 빌딩 벽에는 ''클랜튼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에릭 클랩튼은 크림을 통해 ''악기 예술의 미학''을 획득했다.
블루스와 재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들의 사운드는 즉흥적이고 빠르며 굉음을 발산했다.
멤버들의 정교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은 타 밴드와의 간격 차를 크게 벌려놓았고,
음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들의 앨범들인 1966년의 [Fresh Cream], 1967년의 [Disraeli Gears]
그리고 이듬해의 [Wheels Of Fire] 모두가 명반으로 손꼽히며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를 한자리에 모은 더블 앨범 [Wheels Of Fire]는
미국에서 4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멤버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작품에 명곡 ''White Room''이 수록되어 있다.
그룹은 그러나 서로간의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1968년 11월 해산했다.
클랩튼의 음악 이력 중 최고의 절정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1993년 1월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재결합 공연을 가져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크림의 해체 이듬해 클랩튼은 진저 베이커와 함께 트래픽(Traffic)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패밀리(Family)의 베이스 주자였던 릭 그레치(Rick Grech)를 영입하여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탄생시켰다.
언론에서는 ''인스턴트 슈퍼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들은 공연 때 ''최후의 슈퍼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대로 그들은 1969년 데뷔 앨범 [Blind Faith]를 내놓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1965년 John Mayall''s Blues Brekers - [Blues Brekers With Eric Clapton]
1966년 Cream - [Fresh Cream]
1967년 Cream - [Disraeli Gears]
1968년Cream - [Wheels Of Fire]
''파워 록 트리오'' 크림의 마지막 앨범.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 ''베이스의 귀재'' 잭 브루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의
환상적인 연주가 두 장의 음반에 담겨있다.
한 장은 스튜디오 녹음이었고, 다른 한 장은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이스트 공연장 실황을 옮겨놨다.
블루스와 팝이 완벽한 절충점에 도달한 ''White Room'',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사이키델릭의 ''Pressed Rat And Warthog'',
하드 록 사운드의 ''Deserted Cities Of The Heart'' 등 뛰어난 트랙들로 가득하다.
에릭 클랩튼의 독보적인 블루스 기타 연주가 압권인 ''Cross Roads'',
진저 베이커의 드럼 솔로가 돋보이는 ''Toad''에서는 라이브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1969년 Blind Faith - [Blind Faith]
이 앨범은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들은 상당한 의욕을 갖고 출발했지만 에릭 클랩튼의 싫증으로 인해 1년도 못 채우고 해산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앨범 차트를 동시에 석권하며 ''짧지만 굵은'' 인기를 누렸다.
클랩튼의 작곡 실력이 빛나는 ''Presence Of The Lord'',
스티브 윈우드의 능란한 보컬이 매력적인 ''Sea Of Joy''는 그룹의 위대한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버디 홀리(Buddy Holly)의 곡 ''Well All Right''은 멤버들의 속도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가 일품이다.
11살 소녀의 누드 사진을 앨범 재킷으로 사용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레일라''의 비극
에릭 클랩튼의 1970년대는 한 여인과의 슬픈 사랑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클랩튼은 1968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같은 해 공개된 솔로 음반
[Wonderwall Music]에서 기타를 맡을 정도로 조지 해리슨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조지와 음악적 교류를 하면서 패티를 본 후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당시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패티 보이드는
클랩튼에게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악 밖에 모르던 에릭은 그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실의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패배감은 1970년 11월에 발표된
데렉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마스터피스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남편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을 때 / 나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꿇게 만들었어요 / 레일라, 당신께 애원합니다 / 제발...''
수록곡 ''Layla''의 구구 절절한 가사처럼 에릭 클랩튼의
상처받은 마음은 노래 전체에 용광로처럼 녹아들었다.
고통스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바닥까지 긁어내어, 그 고통을 음악으로 걸러냈다.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다(클랩튼의 이러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얼마 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했고,
둘은 19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음반은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블루스와 삶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걸작의 반열로 들어섰다.
1970년 [Eric Clapton]
1970년 Derek And The Dominos -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데렉'' 에릭 클랩튼이 첫 솔로 앨범을 만들 때 함께 했던 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의 멤버들인
''도미노스''와 함께 그려낸 슬픈 사랑의 대서사시.
''레일라'' 패티 보이드를 향한 애달픈 사랑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Bell Bottom Blues'',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
''Have You Ever Loved A Woman'' 등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타이틀 곡 ''Layla''는 요절한 천재 기타리스트 듀언 올맨(Duane Allman)의
협연으로 드라마틱한 기타 연주의 정점을 밟았다.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의 재해석도 반갑다.
블루스의 ''참뜻''이 살아있는 음반.
극적인 재기 드라마 1부
실연의 파장은 매우 컸다.
에릭 클랩튼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병원과 요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기타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 때부터 드라마틱한 재기 스토리가 전개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그에게 구세주가 찾아왔다.
그룹 후(The Who)의 ''피트 타운셴드''(Pete Townshend)였다.
피트는 이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찬밥 취급을 받던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와 음악계에 데뷔시키는 등 ''선행''을 벌여왔다.
피트는 클랩튼에게 마약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고 1973년
<에릭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를 주최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줬다.
클랩튼은 데렉 앤 더 도미노스 이후 3년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트는 에릭 클랩튼이 정신을 못 차리자 하와이안 기타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에릭 클랩튼은 1년 뒤 재기 작품 [461 Ocean Boulevard]를 내놓았다.
앨범이 출시되기까지는 피트 타운센드와 함께 레이블의 사장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도움이 컸다.
그는 폐인이 된 클랩튼을 위해 요양장소로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선뜻 내주며 재기의 기틀을 마련케 했다.
클랩튼도 스틱우드의 호의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다시 기타를 집어들었다.
스틱우드의 별장 주소가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이다. 스틱우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밥 말리(Bob Marley)의 곡을 리메이크 한 ''I Shot The Sheriff''는 정상을 차지했고,
It Grow'', ''Give Me Strength'' 등이 인기가도를 달리며 ''기타의 신''으로 부활했다.
이후 연이어 내놓은 앨범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Wonderful Tonight''이 실려있는 1977년 작품 [Slowhand]는 300만 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에릭 클랩튼은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던 이 시기를 잊지 못하고,
1999년 마약 중독자 치료기금을 위해 자신의 기타 100대를 경매에 내놓은바 있다.
1974년 [461 Ocean Boulevard]
에릭 클랩튼의 두 번째 솔로 음반.
실연의 아픔으로 깊이 빠져든 약물의 늪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여 만든 작품이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 삽입되어 국내에서 크게 히트한 ''Give Me Strength''를 비롯해,
''Let It Grow'', ''Better Make It Through Today'' 등이 대변한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로버트 스틱우드의 별장 주위를 거닐며 재기를 꿈꿨을 그의 모습이 상상된다.
''리듬 탐구''도 재개했다. 첫 곡 ''Motherless Children'', 밥 말리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 같은 트랙들에서 레게의 흥겨움이 물씬하다.
자니 오티스(Johnny Otis)의 고전 ''Willie And The Hand Jive''도 마찬가지다.
1974년 [There''s one In Every Crowd]
1975년 [E.C. Was Here]
1976년 [No Reason No Cry]
1977년 [Slowhand]
에릭 클랩튼의 별칭을 그대로 타이틀로 쓴 앨범.
슬로핸드는 느린 블루스를 잘 친다고 해서 붙여진 닉네임이다.
매우 빠르게 연주하지만 멀리서 보면 손이 워낙 커서
느릿하게 움직인다는 뜻에서 불렸다는 설(說)도 있다.
그의 블루스 테크닉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느린 블루스는 있지만 빠르고 파워 넘치던 클랩튼특유의 기량은 사라졌다.
그러나 ''Lay Down Sally'', ''Wonderful Tonight''는 그런 생각을 단숨에 뒤집는다.
특히 후자는 클랩튼 품으로 결국 안긴 패티 보이드를 위한 ''러브 송''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수록곡 ''Cocaine''의 제목을 문제삼아 라이선스로 출시되지 못했다.
1978년 [Backless]
1980년 [Just one Night]
극적인 재기 드라마 2부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하지만 별다른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1989년 작품 [Journeyman] 같은 수작을 낚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룹 시절과 달리 음악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없어지고 느슨해진 팝 블루스''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현실 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운명의 여인'' 패티 보이드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투어 도중 만난 젊은 사진 작가이자 배우였던
로리 델 산토(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코너(Corner)가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것이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은 ''내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경찰관과 의료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며 망연자실했던 당시의 심정을 묘사했다.
클랩튼은 그러나 ''예전처럼'' 기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와 노래에 더욱 몰두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치료제라는 것을 이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는 1992년 영화 <러시(Rush)>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Tears In Heaven''에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실었다.
MTV의 제안으로 그해 녹음된 앨범 [Unplugged]에서의 백미도 단연 이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에게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
알짜배기를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위로 선물''로 전달했다.
''추억''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재진입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1994년 발매한 [From The Cradle]은 흥행과 평단 양편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를 동시 석권했고, 블루스의 성찬을 담아낸 작품으로 격찬받았다.
4년 뒤에 내놓은 앨범 [Pilgrim] 또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1년 [Another Ticket]
1982년 [Time Pieces]
1983년 [Money And Cigarettes]
1985년 [Behind The Sun]
1986년 [August]
1989년 [Journeyman]
1991년 [24 Nights]
1992년 [Unplugged]
팝 음악계에 언플러그드 붐을 일으킨 앨범.
에릭 클랩튼은 주무기인 일렉트릭 기타 대신
통기타를 들고 먼저 세상을 등진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을 읊었다.
''Tears In Heaven''이 대표적이다.
또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어쿠스틱의 매력을
''Signe'', ''Before You Accuse Me'', ''Alberta'' 등을 통해 형형색색 담아냈다.
이 음반으로 에릭 클랩튼은 이듬해 그래미상을 휩쓸며 컴백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들을 이용한 상업적 결과물이라는 눈총도 받아야만 했다.
1994년 [From The Cradle]
에릭 클랩튼은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정통'' 블루스를 멀리했다.
오히려 달콤하게 팝이 가미된 ''변형'' 블루스를 선호했다.
이 때문에 블루스를 변질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야만했다.
클랩튼 자신도 이를 인정하며 어린 시절 즐겨듣던 올드 스쿨 블루스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이 앨범의 탄생 배경이다.
클랩튼은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Hoochie Coochie Man'',
프레디 킹(Freddie King)의 ''Someday After Awhile (You''ll Be Sorry)'' 등
초기 블루스 맨들의 곡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일렉트릭 기타와 울림이 큰 목소리는 클랩튼의 진면목이다.
정통 블루스의 ''보물섬''!
1997년 [T.D.F - Retail Therapy]
에릭 클랩튼이 X-샘플(X-Sample)이란 가명으로 키보디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사이먼 클라이미와 함께 조직한 프로젝트 그룹 T.D.F의 데뷔작.
음악은 놀랍게도 블루스가 아닌 앰비언트 테크노.
하지만 키보드 위주가 아닌 ''기타'' 중심의 사운드를 선사한다.
클랩튼의 음악 실험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말해준다.
''Angelica'', ''Pnom-Sen'', ''Waht She Wants'' 같은 넘버들이 주목할 만하다.
에릭 클랩튼의 블루지한 기타 톤과 컴퓨터에서 뽑아낸
드럼 앤 베이스의 결합이 매력적이다.
블루스와 테크노가 만났다!
1998년 [Pilgrim]
2000년 B.B. King & Eric Clapton - [Riding With The King]
2001년 [Reptile]
전설은 영원하다! 에릭 클랩튼은 작품마다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켰다.
혼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발표한 신보 [Reptile〕에도 그의 숨결은 살아 숨쉰다.
신작의 기저에 흐르는 물줄기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촌의 죽음''이다.
삼촌에 대한 존경심을 앨범 전체에 고스란히 옮겼다.
"''Reptile(사전적 의미로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뜻)''은 삼촌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Reptile''이란 단어는 사랑스러운 말이다."
앨범은 프로듀서 사이먼 클라이미(Simon Climie)를 포함하여
전작 [Riding With The King]의 세션 팀이 그대로 참여했다.
또한 시카고 소울의 거장 커티스 메이필드(Cutis Mayfield)의 빈자리를 남겨둔 채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가 부드러운 화음을 더하고 있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레게, 컨트리,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음악 지류를 넓히고 있는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그 폭을 확대했다.
퓨전 재즈 풍의 기타 연주가 도입됐으며, 라틴 음악의 요소도 엿보인다.
보사 노바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첫 곡 ''Reptile''을 비롯해,
''Modern Girl'', ''Son & Sylvia'' 등에서 알 수 있다.
''리듬''에 대한 클랩튼의 지속적인 실험이다.
선배들을 향한 오마주도 계속된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인 기타리스트
제이 제이 케일(J. J. Cale)의 ''Travelin Light'',
1985년에 세상을 떠난 ''점프 블루스의 대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고전
''Got You on My Mind'' 등이 그것이다.
또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1980년대 히트 넘버 ''I Ain''t Gonna Stand For It'',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ome Back Baby''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두 명의 맹인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향수''를 풍기지 않는다.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게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이가 인간이지만 ''비인간적''인 음악이 판치는 요즘이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인생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지 않는다.
합일점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다.
특히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다.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로 쏟아냈다.
''인간의 음악''이다. 당연하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랩튼은 전설로 추앙받는다.
글.안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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